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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Life/책도 보자

아주 사적인 시간

Sonia Kang 2015. 10. 25. 16:46

 
아파...
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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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고의 자는 얼굴을 보면, 그의 약점을 발견한 것 같아 황급히 눈을 돌리고 만다.
 
고는 내 말투에서 어떤 냄새를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는 야생동물처럼 후각이 예민하니까.

 
"아아, 너무 행복해! 매일 아침 노리코 얼굴을 볼 수 있다니, 꿈만 같다!"
 
"하나둘 얏 하고 뛰어넘어서 단번에 신자가 되는거죠. 뛰어넘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고 될 수 없죠. 하지만 신앙은 자유로운거니까... 신자가 될 수 없다고 탓하는 것은 잘못된거겠죠"
 
누나는 고가 데려다주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끈적끈적한 친절은 달갑지 않고 가만 내버려두는 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다. 나는 쓸데 없는 질투나 참견을 너무 자주 친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 풍습이 싫어질 때가 있다.
 
도저히 안 나가보고는 못 배길 욕구 때문이라기 보다 문득 차를 몰고 나와 문득 차를 세워 보았다는, 뭔가를 증명하도록 자기가 자기를 부추기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나는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는 감동을 보이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다시 말해 단순한 일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일 수록 좋았다.
 
지금 그 빈 곳에는 고가 들어와 있지만, 그것은 어쩌다 빈방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들어오세요"란 느낌. 이런걸 고에게 말하면 얼마나 화를 낼까?
 
고도 나도 미즈노의 '미'자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내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잊었기 때문이지만, 고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은근하고 정중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상냥함이나 매력을 감지해내는 능력은 한심할 정도로 민첩하다. 전통적으로 난폭하고 냉혹하고 매력 없고 애교 없는 일본 남자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든지! 하는 느낌. 그리고 아까 나는 '뭔가를 증명하도록' 자기가 자기를 부추기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유의 증명임을 깨달았다. 
나는 자유다, 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는 다이아가 박힌 커프스단추라든가 황금라이터라든가 황금라이터라든가 외제차라든가 하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하지만, 그런건 아직 사치의 레벨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나라는 여자를 자기의 전속 여자로 만든 것은 고의 가장 큰 사치일지 모른다.
그 정도의 자만심은 나에게도 있다. 고는 자만덩어리지만, 나도 상당한 자만심의 소유자다.
 
여자란 것은 그림 같은 인생을 사는 동물로, 근경은 크게 보이고 원경은 작고 희미해져 버리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는 고의 존재가 가장 강렬하고 과거의 남자는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사치란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사치. 여자의 사치. 좀 더 호화로운 사치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확실한 남자가 있고 나도 그 남자가 좋고 그 남자도 나에게 반해 있다는 것은 사치의 극치라고 여겨졌다.

 
도심의 비 오는 밤도 좋지만, 나는 시골의 산이나 바다의 냄새를 맡으면 드라큘라가 피 냄새를 맡은 것처럼 활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남자 같은거 없어!"
나도 큰 소리로 말하고, 지지 않고 차가운 니혼슈를 따랐다. 금색과 붉은 색이 흔들리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잔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감상할 기분이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다. 순간순간을 연결시켜야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는 그런 것을 모른다.
하루하루 즐거운 만담콤비의 생기 있는 생활의 기쁨은, 나를 희생물로 바쳐 이루어진 의식이라는 것을 모른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키스를 해 주었다. 고는 늑대가 앞발로 하얀 새끼 토끼를 낚아챈 것처럼 나를 낚아채고, 토끼의 귀를 비틀 듯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신이시여, 제가 이 남자를 너무 봐주는 걸까요?'
신에게 물었다. 
나는 내 손으로 내 성에 불을 지르고 왔노라고, 물론 말하지 않는다. 고를 기쁘게 해줄 일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잔혹과 기맥상통한 상냥함일지 모른다는 것도,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조개비누의 정식 명칭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가격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선물로 받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백화점에 주문한 것이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난 숫자에 약하고, 어차피 전표를 보았다면 적혀 있는 가격을 보았을 터인데, 고의 말을 듣고 새삼 깜짝 놀란다.
하지만 '좋은 향기' '예쁜 색깔'이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것과, '하나에 3천 엔'이라는 소리를 늘 들어가면서 사용하는 것과는 기분이 다르다.
 
나는 고와 살면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특별히 정결을 지키자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 한 남자와 살고 있으면 나의 경우, 그런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고, 포식한 사람의 나른한 만족감처럼 그런 내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나에겐 화낼 자격이 없다. 내가 가끔 '진심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고도 이것이 '진심'이기 때문에.

그리고 연극이고 진심이고, 사실은 모두 배반자인 것이다.

 
고는 놀라운 소리를 걸레처럼 던져 왔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래서 더욱 본심이라는걸 알게 하는 그런 뉘앙스다. 
나의 나쁜 점은, 이렇게 되면 점점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지고 상대방이 한 말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고의 안색을 살피고 언짢은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고가 하는 말이 하나하나 다 옳다고 믿어벌닌다.
 
고는 내가 자기 말대로 생활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고 꽤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진심에서 그런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때일 수록 부산을 떠는 여자라는 사실을, 고는 아직 모른다.

 
나도 술기운이 돌았다. 행복한 술기운은 아니다.
이대로 고와 계속 갈 수도 있고, '죽일 테면 죽여라' 하는 심정으로 고의 일족과 사이좋게 살아갈 재능도 나에게는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발하고 올게요'라고 집을 나가게 될 것이다.
영원히, 대충대충, 계속 살아질까 생각하면, 참을 수 없는 순간도 올 것이다.
 
 
 
 
 
 
 
P.S. 작가의 후기 중에서...
 
하지만 원래 사랑했던 혹은 서로에게 상냥했던 남자와 여자 사이에 냉혹한 말이 처음으로 오갔을 때의 심적 충격은, 세상의 그 어떤 큰 사건에도 필적할만 하다. 또 만일 한쪽이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한 쪽이 그런 말로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범죄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보통의 범죄와 달리,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그것은 누구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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