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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Life/책도 보자

TV 피플

Sonia Kang 2015. 10. 2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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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으면, 그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
 
사실과 이야기와의 차이가 진실함을 고양시키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세상에는, 사실과 전부 맞아떨어져도 진실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시시하고, 어떤 경우에는 위험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들은 냄새로 알 수 있다.
 
내 인생은, 적어도 처음 부분이 그렇다는 뜻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아주 순탄한 것이었어. 문제라 할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지. 하지만 그 대신에 내가 살고 있는 의미 같은 것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었어. 성장함에 따라 그런 어정쩡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지.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그걸 모르겠는거야. 올 에이 증후군이지. 말하자면 수학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하고, 체육도 잘 하고, 아무 거나 다 잘하는. (...) 하지만 나는대체 어떤 것이 내 적성에 맞는지, 나는 뭘 하고 싶어하는지, 그걸 알 수 없었어.
 
정열이란ㄴ 것은, 어떤 시기에는 그 자체의 내재적인 힘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이 즈음에서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의 관계도 언젠가는 궁지에 몰려, 그 정열마저 질식하여 소멸해 버릴지도 모른다.
 
"탄력이 없어져. 난 잘 알 수 있어. 늘어져버리는거지. 나만 해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쫓겨 다녔어. 잘해라, 더 잘해라 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만큼, 하라는 대로 하지. 그러나 자아의 형성이 그에 따라가지 못해던 거야. 그리곤 어느 날, 찍 늘어져 버리는거지. 모럴 같은 것이 말이야"
 
"모든 것이 끝난 다음, 임금님도 신하도 모두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하였습니다"
 
 
<비행기>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너무 길어"
 
"사람의 마음이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 수밖에"
 
 
<잠>
 
그런 떄 나는 목욕탕 거울 앞에 서서 나의 얼굴을 본다. 15분 정도 꼼짝 않고 본다. 머리를 텅 비우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순수한 물체로서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면 내 얼굴이 점차 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간다. 그저 순수하게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나는 이것이 현재라고 인식한다. 발자취 따윈 관계 없다. 나는 이렇게 지금 현실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고.
 
"행복한 가정의 종류는 한 가지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
 
신기한 일이다. 읽었을 때는 제법 감동을 했을텐데, 결국은 아무 것도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다. 그 당시 느꼈을 감정의 떨림이며 고양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꺠끗이, 하나도 남김 없이 떨어져 나가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할까 하고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결국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뭐라 설명은 하기 어렵지만, 한껏 몸을 움직여서 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를 내쫓고 싶은 느낌이었다. 내쫓는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내쫓는단 말인가? 나는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내쫓는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길들고 나니, 결코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간단한 일이었다. 머리와 육체의 연결을 끊으면 되는 일이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안, 내 머리는 자신의 공간을 떠다니고 있었다. 
 
잠이란 휴식이다 - 그 뿐이었다. 그것은 자동차의 엔진을 끄는 것과 마찬가지다. 엔진을 끄지 않고 계속 작동시키면, 그것은 금방 마모된다. 엔진의 운동은 필연적으로 열을 동반하고, 고인 열은 기계 자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방열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냉각하는 것이다. 엔진을 끈다 - 그것이 바로 수면이다. 인간의 경우, 그것은 육체의 휴식이며 동시에 정신의 휴식이기도 하다. 인간은 몸을 눕히고 근육을 쉬게 함과 동시에, 눈을 감고 사고를 중단한다. 그러고도 남은 사고는 꿈이란 형태로 자연 방전된다.
 
만약 내 육체가 경향적으로 소비되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내 정신은 나 자신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반드시 내 자신을 위해 취하리라.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리라. 치유 따위 필요 없다. 나는 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 원래의 모습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을 버림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확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집중력이 없는 인생 따위는 눈만 반짝 뜨고 아무 것도 보지 않는 상태나 다름 없다.
 
나는 또 머리를 흔들었다. 결국은 타인이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된다 해도, 결국은 내 기분 따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편이 지금 나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럼, 죽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때까지, 잠을 일종의 죽음의 원형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이란 요컨대, 보통 떄보다 훨씬 깊은, 의식이 없는 잠 - 영원한 휴식, 블랙 아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을 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죽음이란, 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이 아닐까 - 그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끝이 없고 깊은 깨어 있는 어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각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죽음이란 상황이 휴식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이 피폐로 가득한 불완전한 생에 대체 어떤 구원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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