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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Life/책도 보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Sonia Kang 2015. 10. 25. 16:50

 
이 시대에 무슨 이런 얘기를 쓰나.. 싶었던
2007년에 초판을 찍은
빨갱이 이야기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어느 시대던의 이야기와
역시 생소할 수밖에 없었던 그 소재에 대한
묘한 감정이 끝까지 갔던...
 
나는 아직 잘 모르겠고
그저 어렴풋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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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건 용기가 없기 떄문이야"
 
그 몰락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배신이라고 불렀고, 또 어떤 사람들은 패배라거나 승리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더 심각한 혹은 더 우스운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이라고 지칭했다. 뭐라고 부르든 그 단어들이 지시하는 바가 죽음, 상실, 몰락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
그들은 그 '죽음'을 독점하려 했으나 그들 역시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 '죽음'과 '상실'과 '몰락
은 동시대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주관적이었다. 그러므로 애당초 선언 따위로 객관화될 수는 없었다. 동시대인들은 임상적으로 그 '죽음'과 '상실'과 '몰락'을 제 몸 안에서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 나온 가장 끔찍했던 구호는 "속 태우고 애 태우는 노태우를 불태우자"였다. 그 구호의 목적은 실제로 현직 대통령을 불태워버리겠다고 다짐하는 데 있는게 아니라, 그런 말을 공공연하게 외치게 될 때의 해방감을 공유하는 데 있었다.
 
나는 우리에게 다가와 "그런 식이라면 너희들의 행동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중년 남자의 두려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해방은 두려울 정도로 요염한 쾌감과 연결돼 있었다. 중년 남자의 말은 옳았다. 완전한 해방이란 사적인 쾌감과 관계된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삼촌은 달렸어. 마치 네가 나를 만나러 올 때면 늘 그렇듯이, 번개처럼. 나를 만나러 올 때는 항상 그렇게 달려와, 알았지? 그때는 정말 사랑받는 느낌이거든.
 
폭력의 반대말은 비폭력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한 바 있다. 권력이 훼손될 때, 그러니까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양될 때, 폭력은 일어난다. 권력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정권 아래에서 폭력이 빈번한 까닭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정권은 대리 감시자들에게 그 불안한 권력을 나눠주는 것으로 권력 유지의 한 방편을 삼는다. 그 대리 감시자들의 불안한 권력은 언제라도 다른 곳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신데렐라의 집에 검소하지만 튼튼해 보이는 마차가 도착하는거야. 그 마차의 생김새는 그 왕국의 정신을 말해주지. 그리고 신하들이 유리구두를 꺼내.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구두를 신어봐. 발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아. 언니들도 그만큼은 인간적이니까. 며칠째 전국 방방곡곡을 다녀서 무척 지치긴 했지만, 신하들은 원칙을 지킬만큼 충직해. 그러니까 가당찮아 보이는 신데렐라에게도 한 번 신어 보라고 말했겠지. 살짝 비웃는 언니들을 뒤로 하고 신데렐라가 발을 내밀어. 그 순간을 상상하면 미소가 지어지곤 했어. 어떨 때는 너무 짜릿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 발이 구두에 딱 맞는 순간, 신데렐라의 영혼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말이야. 그녀는 평온하고 겸손했을까, 아니면 이제 내 팔자는 고쳐졌다 싶었을까? 아니면 왕자가 보고 싶어졌을까? 어서 빨리 구두를 신고 왕자에게 달려가 그 품에 안기고 싶었을까? 다 아니야. 그녀가 이를 악물며 참았으나, 결국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건 득의만만한 표정, 가족 누구와도 공유해본 적이 없는 자신감이었을꺼야. 자기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자의 표정 말이야. 그 장면은 항상 나를 위로해줘. 들어봐, 그건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기적이나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 있었고 이를 증명하는 작은 단서 하나만 있어도 나와 함께 그 시간을 공유한 사람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나를 찾아올거란 얘기잖아.
 
그래서 걸어다니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을 붙잡고 "당신들, 정말 살아 있느냐?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 맞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그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었기 떄문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죽음보다도 더 우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동틀 무렵의 희미한 여명 속에서 흐릿한 풍경을 골똘히 바라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할 떄는 또한 모든 것이 제가끔 의미를 지닌다.
 
뭔가를 찾아나선 힘든 여행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보물, 그게 진정한 보물이다. 
 
"거기에 희망이 무엇이라고 나와 있었지? <투란도트>에 말이야"
"밤이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 짝에도 소용 없는 장난감 같은거야"
 
교도소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런 일들에 그는 최대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젊은 재야운동가가 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의 영혼은 백지상태였으므로 그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자유란 관념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인간의 욕망보다 강한 권력은 이 세상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에게는 그런 식으로 위악적인 측면이 있었다.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 역시 사랑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사랑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더 깊이 사랑할 수도,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그는 순전히 살아남기 위해서 위악을 선택했다.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섹스를 계속하는 동안에는 서로 감정을 사용할 필요가 업었다. 오직 몸만 움직이면 됐다. 서로에게 미안한 점도, 아쉬운 점도 없었다. 미래를 기약할 필요도, 옛 일을 생각할 까닭도 없었다. 그저 벼락과 해일처럼 밀려오는 쾌감에 몸을 맡기면 그만이었다.
 
"라흐마니노프처럼 아름다운 곡을 들으며 자살을 떠올렸던 소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사랑한다'는 말 뿐이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 21번 2악장. 넌 언제나 최고였어.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떄부터. 암소 소피, 절대 잊지 못하겠지? (얼룩무늬 소피. 열 일곱이던 그들이 처음으로 키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피조물) 맹세. 맹세. 맹세. 너 그 맹세를 지켜야 돼. 하늘과 땅에다가 맹세해. 하늘과 땅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사랑한다고 맹세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제 3악장. 오늘은 하루 종일 거울만 들여다보면서 혼자 소리쳤어. 보고싶어, 칼. 보고싶어, 칼. 도합 이백열일곱 번이나 네 이름을 불렀어.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어. 마침 F.K.가 감자와 치즈를 들고 찾아왔기에 그 사람을 꼭 안고 읊조렸어. 보고싶어. 그래도 그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어. 어떻게 해도 그 마음은 그대로야. F.K.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어. F.K.는 네 일을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어.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 2번 제 3악장. 오랫동안 감기로 시달렸는데, 담요 세 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어. 내 몸은 아픈 몸이었고 담요는 아프지 않은 담요였어. 그런 것일까? 내 몸은 이다지도 아픈 몸인데... 낙엽은 아프지 않은 낙엽이고, 기러기는 아프지 않은 기러기. 이 세계는 아프지 않은 세계. 이다지도 내 몸은 아픈 몸인데...... 어제부터 집 앞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가 안들어왔다가, 그 불빛이 깜빡거리는데, 그 가로등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제 2 악장.
 
그러자 할아버지는 "장래 희망은 무엇이냐?"라고 또 물었어. 
나는 잠깐 생각했지. 누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내게 물어봐도 그 시절 나의 장래 희망은 과학자였어. 언제나. 
"그렇구나. 그럼 어떤 분야를 연구할 계획이냐?"라고 물어보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무슨 소리인지 알거야. 원래 어른들은 우리의 장래 희망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거야. 도둑이라거나 사기꾼같은 말만 안 나오면 되는거지. 하지만 그 순간만은 왠지 과학자라고 말하기 싫었어. 그래서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어. 작가면 작가지, 왜 유명한 작가였을까? 아무튼 그때까지 내가 아는 작가들은 다 유명한 작가들이었으니까.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럼 어떤 내용의 글을 쓸 거냐?" 라고 묻는거야. 장래 희망 문답과 관련한, 명백한 규칙 위반이지. 잠시 난감했어. 
 
하마터면 나는 베를린에 와서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구는 이 사람, 강시우를 오해할 뻔했다. 그의 삶은 세차게 밀려오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에 본의 아니게 휩쓸린 조개껍질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무슨 의지가 있었겠으며, 만약 아무런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프락치 활동을 했다고 해서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런 논리로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1980년대식의 죄의식일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런 유의 사랑이란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연민을 배설해야만 견딜 수 있는 시대의 소산에 불과한 것이라고.
 
1980년대식 사랑. 그건 바로 대학 교수인 상희가 이길용에 대해 품었던 감정 같은 것이겠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우울증, 강한 상대에게 품게 되는 열등감, 선한 사람이 마땅히 가지는 죄책감 등이 압도적인 폭력의 시기를 만나게 되면 때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벤야민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아샤 라시스지. 1933년 2월 27일 제국의회가 불타게 되자 브레히트는 프라하로 탈출하고 그 해 5월 10일에 그의 책들은 불태워져. 그 즈음에 브레히트는 파리에 있었는데, 파리의 살롱에 앉아 있으면 옷차림이 촌스러워서 금방 눈에 띈단 말이야. 그 때 짓궂은 아가씨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 중 한 아가씨가 브레히트의 무릎에 걸터 앉아서는 한 여자와 자는게 좋은지, 두 여자와 자는게 좋은지 물어. 그 떄 브레히트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한참 그 아가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지.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지금은 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지금 이 사람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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