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널목의 유령 by 다카노 가즈아키 본문

카테고리 없음

건널목의 유령 by 다카노 가즈아키

Sonia Kang 2023. 12. 24. 22:48

나는.. 그냥 저냥..

 

 

지하철 문이 일제히 열리더니 출근 인파를 내뱉었다. 대도시가 한숨을 내뱉은 것처럼 보였다.

 

그 하얀 병실에서 이별한 이후로는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무엇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딱 한 사람이 빠져나간 세상의 결락을 채워 주지 못했다. 이제는 우는 것도 익숙해져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눈물을 흘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가니 12월의 햇볕이 민폐처럼 느껴졌다.

 

메모장과 볼펜을 주울 떄는 비참한 기분이 치밀었지만, '남들 눈에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아닌가.'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저 어릿광대 역할을 연기했을 뿐이었다. 희극 배우가 비극의 주인공보다는 나았다.

 

정보망이란 정보라는 화폐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는 폐쇄적인 거래소이며, 교환된 정보는 권력과 반권력, 공익과 사익, 선전과 중상모략, 영리 활동과 불법 축재 등에 이용된다 가지지 못한 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별한 직후에는 아내가 집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자주 들었지만, 그 감각도 세월과 함께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아내는 어디론가 떠난 채로 두번 다시 마쓰다의 곁으로 돌아와 주지 않았다.

 

"마쓰씨, 심령 소재 취재는 처음이지?"

"예"

"좋은 걸 알려주지, 심령 소재 취재에는 비결이 있어.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거든 '보인다!' 하고 외치게."

 

마쓰다는 다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물학적인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이 세계와 다른 어디론가 가 버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연배의 남자들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면 가장 먼저 서로 얼마나 늙었는지를 비교한다. 얼굴 주름과 군살은 비슷했고, 머리숱은 마쓰다가 이겼다. 그러나 기름으로 쓸어 올린 고참 형사의 머리는 아직 거뭇거뭇했다.

 

심홍색 벨벳 소파는 고급스럽고 착석감이 좋아서 죄 많은 사람도 포근히 받아줄 것 같았다.

 

마쓰다가 신문사의 유력 부서에 계속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일에 열중하는 성격과 함께 조직 내에서 야심을 품지 않았으며 누군가를 방해하지도 않아서였다.

 

"취직하고 30년이 흐루고 보니 화가가 아니라 기사쟁이로서 인생을 다 보냈더라."

마쓰다는 오로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만 소모해 왔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인생은 좀 더 재밌을 줄 알았어."

 

그러나 그깟 정보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녀에 관해 대체 뭘 안다고, 취재하여 얻어낸 정보는 이 세상이 한 생명에 붙여 놓은 상표에 불과했다. 그녀가 살아왔던 세월, 24년밖에 되지 않았던 인생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그녀 자신밖에 모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