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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이방인" 본문

Everyday Life/책도 보자

알베르 카뮈 "이방인"

Sonia Kang 2023. 12. 24. 22:36

새로이 인생책 등극

 

 

 

처음엔 그가 내게 반말을 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이젠 자넨 나의 진정한 친구야!"라고 선언하듯 말했을 때 비로소 알고 놀랐다. 그가 그 말을 되풀이하기에 나도 "그래!" 하고 대답해다. 사실 나는 그의 친구가 되든 말든 상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친구가 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는 화가 나서 부루퉁한 얼굴로 가버렸다. 그를 붙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호감을 얻고 싶었다. 변호를 더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당신의 호감을 얻고 싶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협조하지 않는다고 조금 원망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내가 여느 사람들과 같다는 걸, 절대적으로 똑같다는 걸 분명하게 알리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의 논리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우선은 너무 더운 데다가, 사무실 안의 커다란 파리들이 자꾸 얼굴에 달라붙었고, 그가 조금 겁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범죄자는 나였으니까.

 

"당신은 내 삶이 무의미하기를 바라는 거요?"

내 생각에 솔직히 그건 나와 무관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가 어찌나 당당하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어찌나 의기양양하던지, 나는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바보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판이 끝났다. 법정에서 나와 호송차에 오를 떄, 찰나의 순간이지만 여름날 저녁의 향기와 빛깔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퀴 달린 감방의 어둠 속에서, 내가 사랑했던 도시의 소리, 행복감을 느끼던 어떤 특정한 시간의 소리, 그 모든 친숙한 소리들을 하나하나씩 재발견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 피로감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들인 것 같았다. 이미 느슨하게 풀어진 듯한 대기 속에서 신문팡리들이 외치는 소리, 작은 공원에서 마지막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샌드위치 장수들이 손님을 부르는 소리, 시내 고지의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전차들의 탄식 소기, 그리고 밤의 어둠이 항구 위로 기울기 전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 이 모든 것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나의 행로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피고인입니까? 피고인은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에용. 나도 피고인으로서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는 나를 향해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나를 공경했다. 사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확실히 나도 그의 말이 옳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행동에 대해 그다지 후회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악착스러운증오심이 놀랍기만 했다.

 

그러나 당연한거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어조로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다정스럽게 대하거나, 호의를 가질 권리가 없었다.

 

그러니 정말 재미 없는 일은, 오히려 사형수 편에서 제발 기계가 순조롭게 작동되어주길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단두대의 결함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출륭한 조직을 이룰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이 바로 거기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형수는 사형 집행에 정신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차질 없이 모든 게 잘 진행되는 것이 그에게 이로운 일이니까.

 

사람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늘 과장된 생각을 하는 법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모든게 무척 단순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계는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높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곧 목이 잘릴 사람이 마치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듯 걸어가서 기계를 만나는 것이다.

 

마침내 내 생각의 방향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게 가장 합리적인 태도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죽는건 분명하다. 어차피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는건 모두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아주 오랜만에 처음으로 엄마 생각을 했다. 왜 엄마가 삶의 막바지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했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곳, 생명이 꺼져가는 그곳 양로원 주변에서도 저녁은 역시 우수 어린 휴식 같았다. 그처럼 죽음 갂이에 있었으면서도 엄마는 마침내 거기서 해방되어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엄마의 죽음을 두고 울 권리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그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죄악을 씻어내고 소망까지 비워냈든, 신호들과 별들로 가득한 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세상의 부드러운 무심함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세상이 그토록 나와 닮았고, 그리하여 마침내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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