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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가장 쉬웠어요 - 토종 한국인이 뼈를 깎지 않고 영어를 꽤 잘 하게 된 이야기 본문

Work & Life/공부하자

영어가 가장 쉬웠어요 - 토종 한국인이 뼈를 깎지 않고 영어를 꽤 잘 하게 된 이야기

Sonia Kang 2016. 5. 1. 01:23




나는 해외 어학 연수 한 번 나가본 적 없는 토종 한국 사람이다

나이 먹어서는 해외 여행이나 해외 출장을 남들보다 허벌나게 많이 다녔고,

그 덕에 영어가 더 좋아지는 덕을 매우 많이 봤지만,

그런 기회를 남들보다 많이 갖게 된 데에는

애초에 내가 남들보다 영어를 꽤 했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 한국 사람이던 외국 사람이던 - 내가 유학이나 연수 경험이 전무하다는걸 알게 되면

꼭 보이는 반응이 몇 가지 있다

1. 에이 정말요? 설마 진짜? 외국에서 어릴때 공부 한 줄 알았는데??? 

2. 정말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웠다구요? 도대체 어떻게 한거에요???




내가 (꽤 객관적으로) 내 실력을 판단하건대

나는 절대 native speaker level은 아니다

특히 formal한 영어 구사에서 부족함이 많고, 

영어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한 사람들에 비하면 어휘력도 꽤 딸리는 편이다


그래서 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걸요' 라고 

겸손의 뜻이 아닌 진심을 담아서 말한다

자꾸 나보고 영어를 잘 한다고 말하면 내심 매우 불편하기도 하다

아니, 나보다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챙피하게 도대체 왜들 그래.. 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반면에,

native speaker나 정말 영어 천재인 것같은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적인 한국인 그룹 안에서는

그게 외국계 기업의 한복판일지라도..

대부분 언제나 내가 가장 영어를 잘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내가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걸요' 라고 말하면 많이들 짜증나 한다 -_-)




종합해 보면..

나는 native speaker에 비해서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내 영어가 부끄럽고

한국의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native speaker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나 정도면 꽤 하는 축으로 쳐 준다. 고맙게도


그리고 사실 꼭 native speaker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게 되면, 일상 회화이건 비지니스 대화이건 크게 문제 없이 할 수 있게 되고,

이건 (특히 한국에서는) 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 주므로

나는 2번 질문(도대체 어떻게 한거에요?!?)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이

별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도 약간의 노력은 필요한

내 비기??? 들을 얘기해주곤 한다



자, 한국의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라온 내가 그나마 영어를 꽤 하는 축에 들 수 있게 된 이유는 뭘까.







1. 영어 애니메이션



내가 딱히 공주 시리즈 덕후였던건 아니었지만

어릴 적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우리 집에 (아마도 불법이었을 듯한) 디즈니 영화 VCR이 있었고

만화를 좋아했던 나는 딱히 더 재미 있는 것도 없고 해서 이걸 또 보고 또 보고 했었다

(아마 인어공주 - 미녀와야수 - 알라딘 정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나중 와서 생각한거지만,

미국의 (특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애들을 주요 타겟으로 여기지 않을 수밖에 없기 떄문에

1)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2) 발음이 매우 정확하고

3)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니 이걸 반복해서 보는 동안

좋아하는 장면의 대사가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외워지고

좋아하는 노래들은 통째로 암기하게 되는 한편,

소리로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의 '가사의 의미'가 뭔지 궁금해진다거나

자주 나오는 단어나 문구가 '도대체 뭔 소린지!!'를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특정 상황이나 유형의 언어를 습득하게 된거다


예전에는 디즈니 뿐이었지만 지금은 픽사니 드림웍스니 엄청 많잖아?

그 중에 자기 취향의 만화 영화, 혹은 노래 하나 고르는건 크게 어렵지 않을꺼라고 확신한다




2. 팝송




기본적으로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 디즈니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습관이 있다 보니 팝송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 

남들처럼 발음을 적어서 외워 부르는 대신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가사부터 펼쳐 놓고 사전 찾아 가며 해석해 보는게 당연하게 되었다


필을 담아(ㅋ) 노래를 부르려면 노래의 원래 의미를 알아야 되고,

단어 단어의 뜻과 감정을 따라가려면 가사의 꼼꼼한 해석은 필수였다

물론, 남들이 해석해 놓은 가사 내용을 보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이지만,

해석해 놓은 사람마다 내용이 다르거나, '뭔소리야 이거!!' 라는 해석들을 만나게 되면..

한 번 사전 찾아 보게 되기도 하는게 사실



나의 감수성 터지는 사춘기 시절에는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전 세계의 여신이고 뮤즈였다 ㅋㅋ

이 때 노래 풍조가 또 감성 타고 진성으로 쭉쭉 뻗어 부르는 때였어서..

과장 조금 보태면 영어 공부 하라고 만들어 놓은 노래들이었던 데다가..


좋아하는 노래 늘어지도록 듣다 보면,

단어를 모르고 문장을 몰라도

가수의 숨소리 하나 악센트 하나까지 몸에 기억이 되는데..

그게 나중에 '영어' 라는 언어와 만나게 되면 저 깊은 곳에서 툭 튀어나와 도움을 준다


요새 같아서야 노래들도 다 너무 빠르고 가사도 너무 많고 한 경향이 있어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나..

좋아하는 노래 한두개 쯤은 팬심으로 카피하는거 많이 어렵지 않잖아?

그리고 아직도 왠만한 애니메이션에는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 한두 곡쯤은 삽입되는게 당연하다고




3. 자연스러운 조기교육




위의 두 개는 자발적인 노력(..이라기 보다는 취미생활)이었다면, 

조금 외적으로 도움과 영향을 받은 부분도 분명히 있는데..


엄마가 영어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던게 내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무슨 영어 교사거나 특별한 능력자였던건 아니고..

그냥 집에서 살림하면서 애 키우는 주부.. 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 정말 더 대단하지만)

그냥 일상에서 편하게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제공해 주셨다



예를 들면 학교 다녀 와서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면 '오늘 암호는 뭐게~~?!' 라고 물어봐서

정답을 맞춰야만 문을 열어주는 우리만의 놀이가 있었다


이 '암호'는 어린이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영어 한마디'로 

정말 쉬운 한 문장을 아침밥 먹으면서 같이 읽어 보고 

오후에 귀가 하면서 한 번 더 떠올리는 정도의 노력이었을 뿐인데

부모 입장에서 놀이 형식으로 재미 있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천재적인 방법이었던 것같다



이 외에도..

이면지의 빈 곳에 엄마가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놓으면

그 아래에 동생과 내가 영어 단어를 적어 넣는 놀이도 있었는데

(구름 그림 밑에 cloud 라고 적는 식)


이것도 딱히 공부한다는 생각 없이 재미로 했던 것같다

잘 맞추면 간식을 주셨던가, 그냥 맞추는 재미로 했던건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엄마는 본인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도 노력을 하셨었는데

영어에 관심 있는 아줌마들 몇 분이 외국인 선교사를 초빙하면

이 사람들이 (보통 대학생 정도 되는 노랑머리 오빠들이었다) 집으로 방문해서

그룹으로 성경 공부를 (물론 영어로) 해 주곤 했다


실제 종교를 전파하는 소기의 목적이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ㅋ

나름 다들 진지하게 (일부 아주머니들은 돋보기까지 끼고) 공부해 임했었다


다들 엄마들이다 보니..

영어의 낙수 효과라도 얻으라고 애들을 옆에 앉혀 두곤 하셨는데..

지금 봐도 어려운 영어 성경이 그 때 귀에 들어왔을 리는 없고

그냥 '외국인' 이라는 데 대한 이질감이나 공포감은 매우 효과적으로 상쇄해 준 정도의 효과가 있엇던 것같다




4. 영어 회화 학원



그리고 한 가지 더, 정말 획기적이었던 엄마의 투자는....

나를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들과 함께 영어 회화 학원에 보낸 것이었다


뭘 보고 '한 번 시켜봐야 되겠다' 라고 판단하셨는지는 몰라도

아직 초등학교 중~후반 혹은 중학교 초반 정도 됐던 시절에 나는 

종로에 있던 시사 영어학원 회화반에서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 공부를 했다



전후 관계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집이나 학교 근처의 영어 회화 학원에 등록을 했던 것 같은데..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있는 수업에 초등학생이 들어가 앉으니 

다들 기가 막히고 자존심이 상해서 '아 뭐야..' 이러다가

자기 소개 한 바퀴 돌고 나서는 더 군 말이 없었던 것같다


그 때는 한국 선생님이셨던 것 같은데..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잘 기억은 안나고..

얼마 안돼서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시사로 옮겼던 것 같고..


그 다음 기억 나는 장면은 

엄마가 나를 지하철에 태워 주면서 

(물론 그 전에 백번도 넘게 같이 지하철 역 이름을 외웠지만)

같이 탄 언니한테 'XX 역에서 얘 좀 내리게 잘 봐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던 모습이다


초등학교 자체도 버스 타고 한참 가야 할 거리였어서 지하철 타고 학원을 다녔던게 엄청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남들처럼 교과 과목 공부가 아니라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니러 종로 (당시 우리 집 수유동)를 다녔다는건..

꽤 특이한 일이 맞았던 것같다



원래는 엄마가 영어를 배우러 파고다 외국어 학원에 다니셨는데

(이모가 이 때쯤 미국에서 유학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배우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다 보니 '우리 애도 할 수 있을꺼 같은데' 라고 생각하셨고..

파고다에서는 너무 어린 학생은 안 받아 준다고 해서 근처에 있고 비슷하게 유명한 시사 학원에 등록시켜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여자애고, 동생은 남자애인데

나만 이런 경험이 있고 동생은 보다 평범하게 교육받았던걸 생각하면..

엄마도 피로가 누적이 되셨던건지(ㅋ) 내가 뭔가 엄마의 눈을 끌었던건지 모르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내가 언어적인 센스가 좋은 편이기는 하다. 이마저도 조기 교육으로 습득된건지 알 길이 없지만)



중학교때까지도 밤 9시만 되면 자라고 온 집안 불을 껐던 집안이라

무리하게 학원 공부를 시켰을 리는 만무하여

아마 방학때에만 회화 학원을 다녔던 것같고..

어린 마음에 대학생~회사원 언니 오빠들이 예뻐해 주는 데서 같이 하는게 재미 있어서

별로 싫다는 생각이 없이 다녔던 것같다


영어 자체야 어차피 회화 교재 갖다 놓고 반복되는 문장 연습, 구문 연습 하는거였으니

같이 하는 사람들이 성인이든 애들이든 상관 없이 쉽게 할 수 있었고..


원어민 교사가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내가 마실꺼라도 사줄까?' 라고 친근하게 말 붙인걸

잘 못 알아 들어서 '됐다'고 단칼에 거절한게 어슴푸레 기억이 난다 (이불킥 ㅋㅋㅋ)


역시 이 때에도 나이에 비해서 잘 하는 편이었을 뿐

어릴 때 배운다고 무조건 갑자기 샬라샬라 하게 되는게 아니거든 ㅋㅋㅋ




5. 외국계 회사




그 후로..

외국어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전혀 외국어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고 (과학고 진학 실패 -_-)

학교 공부 하면서도 대입이 중심이었지 외국어에 진짜 포커스가 있을 리가 없었고

회화 중심으로 언어를 이해하던 나에게 한국 식의 '문법 답 맞추기'는 완벽한 고문이었다


여차저차 대학도 영문과를 갔으나.. (문학도의 국문과 진학 실패 -_-)

4년 내내 해적판으로 철저하게 '영어' 빼고 '문학'만 들고 판 터라 ㅋㅋ 

(또한 특이하게 영문과 입학해 놓고 국문과 복수전공. 본과 냅두고 국문과 공부만 열심히 함 ㅋㅋ)

오히려 고등학교~대학교는 내 영어의 암흑기였던 것같다


남들 다 가는 배낭여행 한 번 안 가고

그냥 늦고 긴 사춘기를 우울해 하면서 지냈고

가끔 팝송에 빠지는 것과 여전한 애니메이션 사랑 이외에는

영어와의 접점도 거의 없는 상태로 보냈다



다시 영어에 불이 붙은 것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였다


이 때는 즐거움 낭만 재미 다 버리고 ㅋㅋ

생존을 위해서 다시 영어를 들고 팔 수밖에 없었다



놀면서 나불거리던 영어와

회사에서 써야 하는 영어는 

천만 광년의 갭이 있었고

거의 다시 시작하는 수준으로 고생했던 것같다


기본기가 없으면 기대치도 없을텐데

적당히 남들보다 나은 영어이니

회사 내의 영어 버든은 다 나에게로 쏠리게 되어 버렸고


사실상 암흑기를 거치지 않은 영어 능력자였더라도

해당 업계의 전문 용어나 축약어 등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적응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기로서니 사회 생활 2년차에게 우리 회사의 명운은 니가 '해외 리서치 회사와의 브랜드 협약'을 따오는 데 있다. 라는 미션이라니. 그 때 저 5 단어의 뜻도 나는 모르고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고...)




6. 러닝 커브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의 심정으로 해내다 보니 어느새 조금 편해지는 시기가 오더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게 더이상 컴플렉스로 다가오지 않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커뮤니케이션이 편안하게 가능해지니

어느새 한국 레벨을 넘어서서 APAC 레벨에서도 '잘 한다는 축'에 들게 되고

영어가 모국어 같은 싱가폴 사람들한테서도 'Sonia(내 현재 영어 이름) 영어 진짜 대박' 이라는 얘기가 계속 들리고..


글로벌 회사에서 외국인 동료들과 제일 편하게 친구가 되고 농담 따먹기를 하는 한국인 직원이 되고,

바로 전 회사에서는 외국인을 상대로 컨설팅 업무까지 진행하다 보니..


나는 더 확신을 가지고

'영어 어려워 하지 마요. native 아니라도 아무 상관 없어요' 라고 주변에 얘기하는데..


남들 보기엔 아직도 금수저가 '돈이 별건가요'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인 듯


아닌데.. 진짜 아닌데..

난 아직도 내 영어가 부끄러운데..

정말 잘 하는 사람들 비하면 나는 정말 새 발의 피도 못 되는데.........



하지만 하나는 인정

러닝 커브를 타게 되려면

일정 기간 죽을똥 살똥 해야 되는 시기가 있는데


나는 남들보다 그 기간을 길게 (초등학교 떄부터 쭈욱) 가졌기 때문에

남들 대비 작은 고통을 겪으면서

남들 대비 이른 시간에

생활과 업무에 적용 가능한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된 것



그래서 남들이 조언을 요구하면

두 가지로 얘기한다

1. 당신의 자녀나 더 어린 세대를 위해서라면 최대한 일찍부터, 재미로 영어를 접하게 하라. 긴 시간을 가지고 언어를 습득하는데 스트레스는 불필요하다

2. 당장의 사용을 위해 영어를 습득하려 한다면, 최대한 필요에 맞는 내용을 쪽집개로 짚어 배우되, 가능하면 생활에 녹아들게 해 보라. 그냥 일상의 영어가 결국 당신의 전반적인 영어 공부 토양을 좌우한다






아...

길다


암튼 그래서 나는 지금 일정 레벨의 영어 실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까지 해온 노력들을 지금 여기 적었고

그 후의 갈고 닦는 얘기들을 앞으로 좀 더 적어 보려고 한다는 말씀


아..

길다 서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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